이 글은 My colleague Julius 를 번역한 글입니다. 두한이라는 이름은 Julius 와 비슷한 느낌을 줄 것 같은 이름으로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원작자에게 문의 결과 해당 글은 CC By-SA 를 따릅니다.

두한이 아시죠? 아마 제가 누굴 말하는지 아실겁니다.

두한이와는 대학때 처음 만났습니다. 항상 만면에 미소를 띈 단정하고 친근한 청년이었죠.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항상 완벽하게 다려진 그의 옷을 제외하면) 그의 경청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절대로 제 말을 끊는 일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틀렸을 때도 기꺼운 태도로 받아들였고, 모든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친구였죠.

그는 모든 수업에 출석했습니다. 종종 저희 노트를 빌려가곤 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 노트랑 비교해 보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한 번은 악명높은 컴퓨터 과제가 있었습니다. C 언어를 사용해 꽤 복잡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조별로 작성해야 했죠. 두한이는 매번 조별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코드를 단 한 줄이라도 짜는 걸 본 기억이 없네요. 아마 그는 마지막에 레포트를 정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두한이 덕분에 레포트는 기가 막히게 잘 정리됐습니다.

최종 발표자로는 당연히 카리스마와 우아함을 겸비한 두한이 말고 다른 친구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발표 내내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덕분에 교수는 문제를 바로 눈치채지 못했죠. 두한이는 천연덕스럽게 우리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C 가상머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슬라이드에는 알 수 없는 로고와 아무 상관 없는 스크린샷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생판 아무 상관도 없는 그림들인데 말이죠.

혹시 이쪽 업계에 관해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 부연하자면, C 는 컴파일 언어입니다. 가상머신이 필요 없어요. C 가상머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말하자면 전기차의 카뷰레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말도 안된다는 뜻이에요.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두한이의 말을 끊고 이건 농담이라고 둘러댔습니다. "그럼요!" 두한이는 제게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맞장구쳤죠. 다들 혼란스러웠겠지만 어쨌든 제 덕분에 발표는 무사히 넘어갔어요.

대학 시절동안 저는 여러 교수들이 "두한이 케이스"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몇몇은 그가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한 편에서는 그가 기초적인 이해도가 부진하다고 이야기하곤 했죠. 그는 몇몇 과목을 낙제하긴 했지만 결국 저와 함께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수년간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큰 회사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일했고, 제법 책임있는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제 상사가 신이 나서는 아주 귀한 인재를 찾았다고 하더군요. 이력서가 아주 비범하다면서요.

그 완벽한 수트 핏만으로도 저는 그가 두한이라는 걸 알아봤습니다. 얼굴도 보기 전에요.

내 대학 동기 두한이!

지나간 세월 동안 저는 나이를 먹었지만, 그는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여전히 카리스마 있고 자존감이 높았죠. 턱수염을 약간 기르고 있었는데 그게 또 뭔가 지혜로운 분위기까지 더해주더군요. 그는 저를 만난 걸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옛날 일과 그간의 커리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와는 달리 두한이는 한 직장에 오래 있지 않았더군요. 그는 대개 일년, 혹은 그보다도 더 짧은 텀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력서는 아주 인상적이었죠. 컴퓨터 관련한 모든 분야에 다채로운 경험을 가지고 있었어요. 매번 기술 수준이나 연봉도 상승했고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비슷한 포지션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제 두 배는 되는 연봉에 보너스까지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보너스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하지만 함께 일하기 시작하던 시기에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처음엔 그에게 회사 내의 각종 절차와 우리의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할당해 주었습니다. 그는 예의 카리스마적인 태도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제게 질문들을 했습니다. 질문들, 이라기보다는 질문 세례라고 해야겠네요. 그는 작업들에 관해 질문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질문들이 꼭 작업과 그렇게 관계있는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했습니다. 코드와 문서를 작성했죠. 우리가 하는 질문들에도 분야를 막론하고 항상 대답을 해줬습니다. 가끔은 정말 훌륭한 대답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평이한 대답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떨때는 정말 말도 안되는 대답을 하기도 했죠. 두한이가 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다른 팀원이 꼼꼼하게 리뷰하고 잘못된 점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만약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의 일이라면 외부에 검토를 요청해야만 했죠. 금새 우리 팀에는 두한이가 만든 모든 문서는 두 명 이상의 팀원이 검토하기 전에는 팀 외부로 공유하면 안된다는 불문율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두한이는 문서를 꾸미는 일이나 발표, 회의 주재 등에는 정말 뛰어났습니다. 제 상사는 정기적으로 찾아와서는 "두한이 저 친구가 정말 복덩이야! 재능도 뛰어나고 팀에 기여도도 높잖아" 라고 제게 말하곤 했어요.

저는 두한이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하려 시도했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우리 팀은 그를 쓸모 없는 회의에 보내버리는 전략까지 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두한이 없이 일을 하려고요. 물론 그런 전략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화가 난 고객을 달래기 위한 끔찍한 미팅이 한 주 내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UI 를 단순화해서 당신이 원하는 모든 일을 정확히 실행해주는 버튼 하나만 남기겠다'는 두한이의 말은 오해라는 것을 고객에게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고객님의 마음을 읽는 기계를 어떻게 개발하느냐는 둘째치고, 고객님의 복잡한 요구사항을 버튼 하나만 가지고 만족시키는 것 부터가 불가능하다고 말이죠.

해킹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 고객에게 두한이가 "인터넷에 연결된 저희 회사 서버는 보안상의 이유로 IP 주소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즈음 우리는 결국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고객과의 미팅에 두한이가 혼자서 가는 것을 금지했죠.

혹시 이쪽 업계에 관해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 부연하자면, IP 주소의 "I" 는 인터넷을 뜻합니다. 인터넷이라는 건 IP 주소를 가진 컴퓨터들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라는 뜻이죠.

IP 주소 없이 인터넷에 연결되어있다는 건, 말하자면 전화번호도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요.

항상 팀원 중 한 사람은 두한이를 바쁘게 만들어주는 구조로 팀도 개편했습니다. 저는 두한이에 대해 나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한이는 제 친구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족쇄가 없는 어떤 화난 개발자가 제 상사에게 이 문제를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뛰어난 두한이를 질투해서 모함을 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말았죠. 제 상사는 두한이에게 아주 만족하고 있었거든요. 그 개발자는 견책을 받고 곧 퇴사해버렸습니다.

저희 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두한이는 거부할 수 없는 오퍼를 받아서 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마지막 출근 날에 그는 케이크를 가져와서 우리 팀원들과 축하 파티도 했습니다. 제 상사와 인사팀은 진심으로 그를 보내기 아쉬워했어요.

저는 두한이에게 작별을 고했고 그 후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수백개씩의 코멘트를 받는 아주 활성화된 그의 링크드인 페이지를 보면, 우리 팀과 함께한 시간도 정말 굉장한 경험이 되어있더군요. 물론 그는 아무것도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써놓진 않았습니다. 그가 써놓은 모든 것은 사실이긴 했어요. 하지만 그의 교묘한 단어 선정과 어설프게 포장된 겸손함이 전체적으로 그가 팀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후에 그는 CEO 대리를 거쳐 다국적 기업에 갓 인수된 한 스타트업의 임시 CEO를 맡았습니다. 어떤 경제지에서는 그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죠. 그 기사 이후로 그는 주 정부의 자문단에도 참가했습니다. 그야말로 혜성같은 커리어죠!

제 경우에는, 두한이를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제 상사가 한껏 웃으며 저를 찾아오더군요. 그는 어떤 영업사원으로부터 그야말로 놀라운 제품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습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생산성에 날개를 달아줄 거"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이제 코딩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정보 검색을 도와주는 인공지능도 있구요. 이메일 작성과 요약을 도와주는 인공지능도 하나 있습니다. 이것들을 끄는 건 허용되어있지 않아요.

매 분, 매 초마다 두한이에게 둘러싸인 기분이 듭니다. 수많은 두한이들에게요.

저는 두한이로 이루어진 안개속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하는 모든 클릭, 제 폰에 오는 모든 알림이 두한이에게서 오는 것 같아요. 제 생활은 두한이들로 뒤덮인 지옥입니다.

제 상사가 저를 보러 와서는 팀의 생산성 하락이 위험수치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나요. (물어볼 것도 없이 우리보다 더 최신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경쟁자들에게 따라잡힐 위기에 처해있다며 말이죠. 그래서 시간과 생산성 관리를 위한 새로운 인공지능을 설치해줄 컨설턴트를 불렀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습니다. "맙소사! 두한이가 더!!"

제 상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제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이해하네. 두한이가 그립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그 친구가 있었다면 이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줬을텐데 말이지."